빡침을 뒤로하고 적어보는 오늘 경기 문제점 (feat. 그래도 잘된 점)

일단 광주가 작정하고 나왔음. 미들에서 볼 잡으면 네명이 우르르 에워싸고 후반에 다리 다 풀린 와중에도 눈 희번득하며 파워축구 시전하던데 하 시바 뭐 잘 했다는 말밖에 안나옴. 여튼간에...

속에서 올라오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하는 깊은 빡침을 뒤로 하고 오늘 경기 패인을 꼽자면: 

1) 확실한 공격찬스 부족 

위에 썼듯 광주는 오늘 오버페이스를 각오하고 전방이랑 미드필드에서 개같이 뛰고 공간을 지워버리는 축구를 선사함. 그래서 우리가 중앙 통로를 통과하는데 어려움을 좀 많이 겪었어. 월드컵에서 쌓인 전훈 (지난 게시글 참조: 2022 월드컵으로 알아본 현대 축구의 흐름)이 있어서 아마 올 시즌에 이렇게 나올 팀들 많을거야. 

물론 월드컵에서 이걸 극복하는 방법이 없었던게 아니어서 이런 밀집대형을 뿌수는 방법은 측면중심 플레이임. 왜 우리가 잘하는 윙백 끝까지 올려서 주거니 받거니 크로스 올리는 그거. 

병근이형도 이걸 의식했는지 전반 중후반부터는 중앙공간에 우리 선수가 없을 정도로 아예 중미가 측면 빌드업에 가담하는 모습이 보이더라. 여기까진 괜찮았음. 의도를 알기 때문에.

근데 오늘은 공격상황에서 우리 풀백 둘 (이기제+김태환)이 존재감이 좀 별로였어. 태환이는 애초에 우측에서 에너지 레벨을 불어넣는 버프형 선수(...)라 실제로 마무리를 해주는 모습이 부족했고, 기제는 역할이 달라졌는지 후반 마지막 10-20분을 제외하면 오버래핑을 좀 자제하는 모습이더라. 우리 주력 득점루트가 왼쪽인걸 생각하면 이기제의 공격가담이 아주 많이 아쉬웠음. 그것도 상대가 기제를 잘 틀어막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스스로 기제를 내려서 더더욱. 기제가 올라오지 않아서 김보경이 한동안 측면에서 고립됐기도 했고.

결국 한번씩 번뜩이는 우리 공격루트는 중앙에서 우리가 짤라먹은 볼을 빠르게 전개해서 만들어낸 장면들이 대부분이었어. 그리고 그 전개장면 자체는 몹시 날카롭고 좋았음. 하지만 문제는...

2) 측면으로 풀어나가다 보니 미드필드 숫자싸움 문제

측면 과부하를 노리며 경기를 풀어나가려다보니 우리 공격이 실패하고 전환이 되는 상황에 자연스럽게 2선과 3선 사이가 공간이 비는 모습이 자주 보이더라. 그러다보니 광주가 세컨볼을 잡을 확률이 더 높아지고, 우리가 중앙에서 볼을 잡아서 중앙으로 공격을 전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어. 세보진 않았지만, 아마 득점찬스성으로 제대로 나온 공격찬스가 90분 통틀어 4-5번인가 나왔을거야. 광주 감독이 똥줄 가득 탄 얼굴 해가지고 계속 "야! 야이씨! 세컨보오옭!" 하면서 소리 고래고래 지를 정도로 우리가 중앙에서 광주 압박공간을 벗어나면 정말 날카로운 공격을 했는데, 그런 장면이 너무 덜했음.

후반 언젠가부터 이종성을 올리고 고승범이 아래로 내려오는 선택을 했었는데, 다른 형들이 언급하는대로 고승범을 중앙에서 좀 더 싸우게 놔 뒀으면 어땠을까 싶어. 아마 볼 전개가 잘 안된다 생각했는지 키핑이 되는 이종성을 전진배치 하지 않았나 싶은데, 오늘은 결과론적으로 개싸움을 붙이는게 먼저였던거 같음.

3) 광주 키퍼가 미쳤어요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 고승범 킥을 그렇게 잡아내는게 말이나 됨? 아코스티 제대로 감은 킥을 그렇게 선방한 것도 그렇고. 금마 오늘 인생경기 찍었음.

4) 그 외 잘된점, 그리고 그것 때문에 속 터지는 점

객관적으로 빡침을 걷어내고 생각해본다면 더 이상 작년과 같은 로또 얻어걸리길 바라는 이른바 해줘축구는 아니었음. (오늘 죽다 살아난 울산과는 달리 ㅋㅋㅋ) 거세게 압박하는 팀 상대로 볼도 잘 돌렸고, 프로축구판 제일가는 전략가라는 양반 상대로 (나는 딱히 의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점유율 싸움에서도 그렇게 밀리지 않았어. 에너지레벨 싸움으로 몰아가려는 광주 상대로 침착하게 경기운영 하면서 후반에 광주 힘이 엄청 빠지기도 했었고. 뭐 결과론적으론 세오타임에 말도 안되는 골 먹고 졌지만.

다만 너무 침착하게 경기운영을 하다가 우리가 잘 하는걸 놓치지 않았나 싶어. 우리 강점은 측면에서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거야. 그런데 오늘 보여준 모습은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위해 그 장점을 많이 희석시켜버린거 같아. 측면공격을 위한 재원이 충분히 마련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윤이 우리 경기 해설할 때 종종 얘기하듯, "도전적인 플레이"가 많이 부족했다고 봐.

마지막으로 나는 오늘 경기 많고 많은 아쉬운 점 중 제일 이해가 되지 않은점을 꼽자면 이기제의 엔드라인 크로스 능력을 그냥 묻어버린거라 하겠어. 작년에 왼발 하나로 어시왕을 한 선수인데, 왜 그 재능을 살리지 않고 볼 배급에만 신경을 쓰게 했는지 이해가 좀 안가. 만약 공수 밸런스 문제였다면 다른 형 말대로 차라리 이기제를 올리고 태환 (또는 호익)이를 내려서 플레이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 만약 호익이가 나왔다면 3백 스토퍼도 가능한 재원이라 상대 역습 차단에도 큰 효과를 봤을거 같고.

뭐 여튼 그러함. 어떤 부분은 작년보다 나아졌지만, 어떤 부분은 작년에 잘됐던 걸 폐기해서 많이 아쉬워졌다 하겠음. 약이 되는 충격패였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광주는 너무나도 이겼어야 했을상대라서 빡침. 그리고 병근이형 올해 들고 온 축구가 2018년 가을 냄새가 너무 나는건, 그래서 더 마음이 심란한건 나 혼자만은 아닐거임.

뱃살 때문에 맥주 끊어야 하는데 오늘은 걍 술 먹으러 갈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