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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조금 늦은 수원더비 직관 후기: 서로가 죄인이 아닐 수 있도록

조회 수 948 2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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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우구데

* 경기 내용에 대한 이야기 없음 주의, 꼭 하고 싶던 이야기라 주절주절 길어짐 주의 *


# 서로가 죄인이 아닐 수 있도록

여름 이후로 또다시 힘든 가을을 보내고 있던 우리였잖아요.

한동안은 선수들이, 그리고 감코진이 정말 많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멀리서 버스타고 왔던 어린 학생들과 그런 학생들을 대견해하는 응원석 선배님들,

여러모로 몸이 불편한데도 어떻게든 우리 팀 응원에 도움되겠다고 와주셨던 팬분들,

드레스코드 관련 대토론회 끝에 검은 겉옷 안에 파란 유니폼 입고 오셨던 팬분들.

끝내 동점골을 얻어맞던 대전전의 끝에서 한참을 하늘만 바라보던 콜리더님,

인사 없이 사라지는 선수들에게 어떻게든 닿아보려고 온 몸으로 소리질러내던 팬분들에

상대 팀에게 강등콜부터 온갖 조롱이란 조롱은 다 받아내고도 자리를 지키던 우리들.


그런 팬분들을요.


내가 오늘 검은 옷을 입지 않아서, 

내가 오늘 파란 옷을 입지 않아서,

내가 오늘 화장실을 다른 타이밍에 가서,

내가 그날 먹었던 식당에서 식사를 안 해서,

내가 오늘 괜한 말을 해서

그래서 이기지 못했나보다, 졌나보다...


이런 말을 하고 스스로를 탓하는 죄인을 만들어야만 했냐고,

선수들에게 따져 묻고 싶었던 시간이 참 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엪전 직전에 구단 인스타에 등장했던 선수들의 손편지를 보면서 괜히 좀 울컥하더라고요.

물론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말 못할 상황들도 너무나도 많을테고,

그 중 얼마만큼이 진심이었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요.


사실은, 선수들도 잘 하고 싶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프로 스포츠 선수면 당연히 이기고 싶을텐데.

정말 저기로 가야하는 것이 너무나도 보이는데 따라주지 않는 다리를 내려친 순간들이 있었을텐데.

선수들도 자기 이름을, 팀을 불러주며 정말 지치지 않고 응원하는 팬들 앞에서

얼마나 떳떳하게 서서 나 이기고 돌아왔다고 웃어주고 만세를 부르고 싶었을까요.


물론 아쉬운 부분들은 여전히 많고, 냉정하게 지금 스쿼드가 탑급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이번 시즌 끝날 때 까지는 

팬들과 선수들이 서로를 죄인으로 만드는 상황이 없기를 그저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선수들도 이번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할 수 있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많은 '그렇지만' 들을 넘어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보여주고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시기니까요.



#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지만, 팀보다 위대한 팬은 있는 것 같아요.

카니발 할 때 콜리더 분이 했던 이야기가 있었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여러분들을 보며 그런 순간을 넘겼었다고요.


필드 위의 상황에 말문이 막혀서 아무런 소리가 안 나올 때,

도저히 희망을 볼 수가 없어서 그저 팔짱을 끼고 주저앉고 싶었을 때

내 눈으로 본 것이 맞나 싶어서 급하게 핸드폰으로 상황을 확인해볼 때


옆사람이 불러주는 응원가를 듣고 다시 가사를 따라가는 그 순간들과

이를 악물고 두 팔 높이 올려 뛰고 있는 모습에 다시 발을 떼어보는 순간들과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악을 쓰고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은 소리로 

트리콜로를 외치고 선수들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리는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비록 양형모 선수 뒷편의 골망이 흔들리더라도 

우리의 응원소리만큼은 끊기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전해져서 열 명 같지 않은 열 명으로 '기적'을 만들어냈고요.


그랬기 때문에 나중에 집에서 경기 중계 영상을 볼 때 들렸던

팀보다 위대한 팬은 있는 것 같다는 해설의 말에 

경기장에서는 끝까지 억눌러뒀던 눈물이 그제서야 조금 났던 것 같습니다.



# 이 소원이 '감히' 가 아닐 수 있기를

언젠가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올해 K리그/수원삼성을 입문한 뉴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있었다고 전해들은 타 팀에 대한 강등콜이라거나, 

예전의 그러한 상황들은 겪지도 못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데요.


'수원을 잡는 법은 잘 안다'고 평가받던 수엪도 이겨냈으니까요.

'수원 강등' 만이 올해의 유일한 목표이자 사방에 써붙이는 문구인 팀에게

본인들의 팀을 위한 응원보다 우리를 향한 강등콜 소리가 훨씬 큰 팀에게 

절대로 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롱하던 우리의 레전드를 위한 노래를 그 앞에서 당당히 부를 수 있기를,

우리에게 남은 기회가 두 번이 아닌 네 번이기를,

그 끝에서 추운 날씨에 서로 고생했다고 끌어안고 기뻐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소원이 '감히' 가 아닐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모두들 고생 많으셨던 인사는, 12월 9일까지 아껴보겠습니다.



+)

소소한 저만의 경기 전 에피소드 하나.

제가 경기 전날-당일 아침에 뜬금없이 맴돌고 부르는 응원가가 그 날을 알려주게 되더라고요.

최근 포항전은 데스파시토 (결국 승리하고 울면서 부르는 엔딩을 맞이했습니다),

대전전은 오블라디였고 (...부, 부르기는 했...)

이번 수엪전은 염기훈 콜이었습니다. 

염기훈 콜은 무조건 카니발!이라 약간의 기대와 제법 큰 긴장감을 가지고 들어갔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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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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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우구데 23.11.14. 14:31 @ 우아한아길이
다음 응원가도 이번만큼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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