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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칼럼

2022 월드컵을 끝으로 끝나버린 수원 소속 메이저 대회 출전 기록에 대해 arabo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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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번째

1995년 창단하여 1996년부터 리그에 참가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

비록 지금은 전과 같은 명성을 보이지 못하지만 과거 많은 스타를 보유했던 팀 답게 갖고 있던 기록이

팀 창단 후 모든 메이저대회 출전선수 배출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2022년 월드컵 최종명단 발표로 인해 오랜기간 이어오던 기록이 결국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해당 기록은 수원 삼성만 가지고 있던 기록으로 아는데 (아닌 경우 댓글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수원 소속으로 메이저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기준: 1996년 이후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컵 대상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1. 박충균 (1996~2001)


(사진에 2번 선수, 올림픽 대표 당시 사진을 찾기 힘드네요.)




이번에 이랜드 감독으로 부임한 박충균 선수입니다.

일찌감치 유망주로 주목 받던 박충균 선수는 수원 삼성으로 우선 지명하여 프로데뷔를 하였습니다.

첫 시즌 좋은 활약으로 팀을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렸으나 2차전 퇴장으로 패배에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수원에서 활약은 나름 괜찮았지만 이기형, 이병근 등에 밀렸고 큰 부상으로 인해 수원에서의 커리어는 막을 내립니다.

후에 성남, 부산, 대전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 전북 최강희 감독 밑에 오래 있던걸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리얼블루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수원팬에게 박충균은 볼핸들링 하던 모습만 기억되고 있긴 하죠...



2. 이경수 (1996~1997)

(역시나 올림픽 대표 당시 사진을 찾기 힘드네요.)

네. 박건하 체제 당시 수원의 수석코치로 있었던 그 이경수 맞습니다.

이경수 선수 역시 창단 팀 우선지명으로 1996년 수원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합니다.

프로 데뷔 이전부터 당시 차범근의 울산에 프로제의를 받았으나 숭실대로 대학진학을 택했고

당시 약팀이던 숭실대를 우승 시키며 올림픽에도 참가하게 됩니다.

앞서 박충균과 같이 기대받던 유망주였지만 윤성효, 김진우에 밀려 많은 기회를 받진 못했고

97년엔 장기부상까지 당하며 결국 이듬해 울산의 신홍기와 트레이드되어 팀을 떠납니다.

후에 울산-천안일화-전북-서울시청-대구-쓰촨-대전 등 저니맨 생활을 하다가 선수 은퇴를 하였고

숭실대 감독으로 이동준 등을 배출하며 호성적을 낸뒤 박건하 체제하에 수석코치로 부임합니다.

현재는 수석코치직에서 물러나 수원에서 스카우터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3. 이기형 (1996~2002)

이기형 선수는 고려대 졸업 후 J리그 제의를 뿌리치고 역시 창단팀 우선지명으로 수원에 입단합니다.

당시 신인치고 고액의 연봉을 지불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앞서 두 선수와 달리 수원에서 오랜기간 활약하며 수원의 트로피 수집에 큰 공헌을 했던 선수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대표에서도 왼풀백으로 오랜기간 활약하며 과감한 플레이와 캐논슈터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이기형 역시 큰 부상으로 한동안 공백이 있었으나 2001년 복귀 후 수원의 아시아 재패에 또 다시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FA자격을 얻은 이후 협상이 결렬되며 당시 엄청난 선수영입을 하던 성남으로 전격 이적합니다.

또한 이후 서울로 이적하며 수원팬들에게 현재는 꽤나 멀어졌습니다만

수원의 올드팬들한테 이기형의 캐논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향수로 남아있습니다.





1996년 아랍에미리트 아시안컵


이기형 (1996~2002)


(이하 동문)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고종수 (1996~2004)





지금은 불미스러운 범죄를 저지르며 또 다시 명예가 실추된 인물이지만



수원하면 고종수, 고종수하면 수원인 것은 너무 당연했습니다.

실제 수원의 팬층이 급격하게 늘어난거에 너무나도 큰 역할을 했던 선수이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참가 이후 K리그의 트로이카를 이끌었던 인물 중 한명입니다.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저돌적이고 겁 없는 플레이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보게했습니다.

고종수는 98년 월드컵 출전은 물론 리그MVP와 베스트11, 팀 우승까지 싹쓸이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고종수 (1996~2004)

(당시 사진 찾기 너무 힘들어서 복붙 ㅈㅅ)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고종수는 수원 소속으로 유일하게 뽑혀갑니다.

98프랑스 월드컵 이후로 엄청난 주가를 터뜨리고 있던 고종수였기에 그의 차출은 당연해 보였습니다.

이 당시 산드로가 수원에 오면서 고데로 트리오의 시작이기도 했지만

사실 이 때부터 고종수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하였고 올림픽 차출로 수원에서 많은 경기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컵대회와 챔스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20경기 출장에 11골 7도움이라는 엄청난 스탯을 기록합니다.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

이운재 (1996~2010)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운재 선수에 대한 설명은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수원의 미스터 블루 이운재는 수원에서 오랜 기간 있었던 만큼 선수 내내 메이저 대회에 차출합니다.

왜 수원하면 이운재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며

수원의 통산 우승 횟수=이운재 통산 우승+2 라는 거에서도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이운재 역시 수원의 창단멤버로 합류하지만 당시 이운재는 선수 생명이 걸린 싸움을 했습니다.

1996년 올림픽을 준비하던 중 간염으로 인하여 한때 선수 생활을 중단할까도 고민했던 그였지만

간염에서 호전된 뒤 98년 부터 수원의 골문을 꾸준히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98년은 이운재가 풀타임을 뛴 첫 해인데 바로 0점대 실점율을 보이며 허정무에 의해 국가대표팀에 복귀하게 됩니다.

당시 대표팀 터줏대감 김병지에 밀렸고 신예 김용대 또한 치고 올라오고 있었으나

김병지가 아시안컵 명단에 제외되고 김용대도 신통치않은 활약을 보이며 주전을 꿰차는데 성공합니다.


이후에 이운재의 행보는 뭐... 너무나 유명하니 다 생략하겠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1. 이운재 (1996~2010)

말해 무엇합니까

참고로 이운재는 2002년 3월 상무에서 제대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수원 소속으로 월드컵 참여기록이 됩니다.




2. 최성용 (2002~2006)

현재 수원 삼성에서 수석코치로 있는 최성용 선수입니다.

한국과 일본을 자주 오가며 선수 커리어를 이어갔던 선수로 대표팀에서도 오랜기간 생활했었습니다.

우측 풀백으로 98년, 2002년 2회 연속 월드컵을 갔으며 98년엔 3경기 모두 출전했지만 02년엔 아쉽게도 출전하지 못합니다.

수원으로는 2002년에 왔으며 최성용 선수 커리어에서 가장 오래 뛴 구단이 바로 수원 삼성입니다.

2005년엔 팀의 주장까지 맡으며 시즌 초 트로피 수집에 큰 역할도 했습니다.

이후 J리그 임대생활과 울산에서 뛰었으며 J2에서 선수 경력을 마감 후

2013~2018년 세오체제에 코치로, 2022년 이병근 체제부터 수석코치로 수원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1. 조병국 (2002~2004)

(사진 속 5번)


'에어 조' 조병국은 한때 수원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주목하던 유망주였습니다.

김호 말기 시절 유망주 정책이던 일명 '김호의 아이들' 주측 중 한 명으로 프로데뷔 또한 수원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을까. 조병국은 한때 국민들에게 몰매를 맞으며 잊혀질 뻔 했습니다.


홍명보의 후계자로 지목되며 2003년 큰 기대와 함께 A매치 데뷔를 하였으나

그해 4월 일본과의 대결에서 걷어내는 볼이 일본 선수 맞고 들어가며 결승골에 빌미를 제공한데 이어

올림픽 대표에서도 한일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며 요즘말로 '나락'에 빠지고 맙니다.

그렇게 올림픽을 참여하긴 했지만 2004 시즌 말 부상을 당하며 고종수와 함께 전남의 김남일과 트레이드 됩니다.

전남에서도 부상으로 인해 잊혀지던 조병국은 성남에서 화려하게 부활했고 이후 여러팀을 돌다 은퇴합니다.

여담으로 성남에서 활약을 기반으로 대표팀에 한번 더 뽑혔지만 또 다시 결정적인 패스미스를 기록하며

대표팀과는 지독하게 악연으로 기록된 선수이기도 합니다.



2. 김두현 (2001~2005/2009~2014)

고종수 이후, 권창훈 이전에 수원팬들이 가장 기대했던 선수

하지만 지금은 애증 그 자체로 기억되고 있는 선수 김두현도 04 올림픽 멤버였습니다.

01년 수원에서 프로데뷔 하였고 경쟁자들인 고종수, 가비, 에니오 등이 부상, 부진 등으로 밀린 사이 주전을 꿰찹니다.

03년 김호 감독의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프리킥 골을 넣고 04년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변화된 전술 등으로 인해 마찰이 일었고 성남으로 이적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어나며 좋게 헤어지진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끝날줄 알았던 김두현과의 인연은 예상치 못하게 2009년 다시 이어집니다.

WBA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장기부상 이후 팀에 입지를 잃은 김두현은 2010 월드컵 참가를 위해 수원으로 복귀한 것입니다.

김두현은 2009년 여름 돌아오자마자 위기의 수원을 반등시키는데 성공하며 FA컵 우승을 이끌었지만

크게 염원했던 월드컵은 결국 부상으로 인해 낙마하고 맙니다.

이후 군 문제를 해결하고 팀에 복귀하여 주장 완장까지 달며 큰 기대감을 팬들은 가졌지만

또 다시 장기부상을 당하며 풀타임으로 큰 활약을 펼치진 못합니다.

허나 나올때마다 중원의 든든함을 더해줬으며 특히 룸메이트였던 권창훈의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2015 시즌을 앞두고 FA가 된 김두현을 수원은 고액의 연봉으로 염기훈과의 재계약만 선택하며 다시 성남으로 돌아갑니다.

이후에 코치로서 2020년 한 시즌 함께 했지만 지금은 또 전북의 코치로 부임하며 팬들에게 좋은 인상만이 남아있진 않고 있습니다.





2004년 중국 아시안컵

이운재 (1996~2010)






2006년 독일 월드컵

1. 이운재 (1996~2010)



2. 송종국 (2005~2010)

레알 수원으로 불리던 당시 02멤버 중 하나로 오랜기간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던 송종국입니다.

페예노르트로 이적 당시 부산에서 영구결번까지 해줬지만

수원이 무려 25억원에 송종국을 영입하며 자연스레 영구결번은 해지되었습니다.


사실 송종국이 수원 초기부터 좋은 모습을 보였던건 아니였습니다.

최성용이 떠난 우측 풀백으로 잦은 부상으로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이며 02년의 모습을 사라졌고

특히나 2006월드컵을 앞두고는 월드컵 출전을 위해 몸을 사리는거 아니냐는 태업 논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2006월드컵에서도 토고전 그리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후보로 밀렸지만 이후 수원에 복귀 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멀티포지션 소화로 인해 선수 말년에는 중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수원의 리그 마지막 우승 당시 2008년 주장이나 팀의 마지막 골을 기록하고

2009년 수원이 부진하자 완전 삭발까지하며 팀 스피릿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렸했던 선수입니다.

윤성효 체제로 수원이 바뀌며 팀을 떠났지만 이후 각종 사생활 문제 등으로 인해 크게 조명 받고 있지는 못하는 듯 합니다.



3. 조원희 (2005~2008/2010/2016~2018)


조원희.jpg

현재 조스카스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도 비호감 이미지가 박혀버린 조원희

어떻게보면 조원희 선수는 06월드컵 최고 깜짝 발탁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2005년 수원으로 왔지만 '돌아오지 않는 윙백'으로 불릴만큼 공격의 적극성은 좋았지만 수비적으로 떨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만한게 조원희는 청소년 시절 공격수로 활약을 했고 수원으로 오기전 광주상무에서야 풀백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조원희를 눈여겨보던 아드보카트는 과감하게 조원희를 차출했고 데뷔 59초만에 뮤탈슛으로 데뷔골을 기록합니다.

또한 당시 대표팀 경쟁자가 송종국, 차두리, 오범석 등 쟁쟁한 선수였지만 이들을 제치고 송종국과 함께 월드컵을 갑니다.

비록 본선에서는 송종국과 이영표에 밀려 출전하지 못했지만 이후 조원희의 가치는 한층 높아졌고

완벽하게 상한가를 치기 시작한건 08년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향하고입니다.


좋은 활약으로 위건에 입성한 조원희지만 경쟁에서 밀리고

김두현과 같은 이유로 2010년 수원으로 임대복귀하여 주장까지 수행합니다.

하지만 예비명단에서 탈락하며 대표팀에서는 09년 기성용의 파트너로 좋은 모습을 보였던게 마지막이 됩니다.




4. 김남일 (2005~2007)

사실 김남일의 대표팀 이야기야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잘 알거니까.. 수원 시절 얘기를 좀 하자면

지금은 뭐 다들 알다시피 '배신자'로 유명합니다.


2005년 조병국과 고종수를 전남에 내주는 대신 FA가 임박했던 김남일을 영입하는데 성공합니다.

당시 감독이던 차범근 감독은 김남일에 대해 강한 러브콜을 보냈고 전남 역시 김남일에 대한 가치를 받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당시 노쇠화가 진행되던 김진우의 대체자였던 김남일의 이적은 당연 화제였고

중미로 훌륭한 경기력은 물론 압도적인 스타성으로 많은 여성팬들이 수원에 유입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경기장을 가면 이관우와 함께 김남일의 마킹이 반을 이루었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2006년 월드컵을 갈 당시에는 팀의 주장이기도 했고 그 활약은 2007년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2007년 스포츠 탈장 부상으로 인해 김남일은 일본에서의 치료를 희망하였고 수원은 이를 허가하였으나

김남일은 이 당시 J리그로의 이적을 추진했던게 후에 빗셀고베로 이적 후 알려지게 됩니다.

당시 로컬롤로 '자유계약으로 구단에 입단하여 입단시 계약금을 받은 선수가 해외이적을 희망할 때에는 먼저 소속 구단과 합의를 해야 한다' 라는 부분을 무시한채 고베와 우선합의를 하게된 것.

또한 2008시즌을 앞두고 세계 경제 위기 속 타격을 입은 삼성이 구단 지원금을 줄인다는 얘기에

송종국 등 몇몇 선수들이 인터뷰를 하였고 그 중 한 명이 전 시즌 주장이던 김남일이였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팀이 힘들어져도 수원을 떠날리는 없다고 했지만 이미 고베와 모든 합의가 완료된 상태였던거죠.


그렇게 일본으로 간 김남일은 인터뷰에서도 논란을 일으키며 수원팬들이 완벽하게 등을 돌리게 했고

자유계약으로 풀어준 덕에 국내복귀 시 수원이 우선권을 쥐고 있었던 것으로 인해 인천 복귀 시에도 잡음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2007년 아세안 아시안컵

1. 이운재 (1996~2010)


이운재2007.jpg

대회 당시에는 엄청난 '영웅'이였지만

사상 초유의 대회 기간 중 음주파동으로 대표팀 출장 정지등 최악의 시기를 겪던 시기였죠....

이후 이운재는 2008년 정지가 풀리며 대표팀에 복귀합니다.



2. 송종국









다시 대표팀의 부름을 받으며 아시안컵에 참여하게 되지만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오범석에게 밀리며 큰 활약을 선보이진 못합니다.

여담으로 이 대회를 기점으로 한국은 4백 시스템이 안착되었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1. 백지훈 (2006~2016)


중간에 군 입대, 울산으로의 임대기간도 있지만 무려 10년 동안 수원에서 활약한 '파랑새' 백지훈입니다.

2005년 청소년 월드컵 주장으로 나이지리아 전 결승골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백지훈은

라이벌인 FC서울에서 수원으로 왔지만 당시에는 데얀만큼이나 큰 이슈는 아니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청소년 대표팀에서는 물론이고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며 최종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또한 A매치도 15경기를 뛰며 대표팀에 기대주이긴 했지만 약한 수비력으로 인해 큰 빛을 보진 못했습니다.


지금에야 백지훈이 말년 때 안타까운 모습으로 평가가 안좋지만 군대가기 이전 백지훈은 수원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습니다.

06년 후반기 수원으로 와서 팀내 최다 득점과 포항과의 PO 환상적인 중거리골을 기록하였고

09년까지 부상이 발목을 잡았지만 팀의 창의성에 힘을 불어넣어주었던 선수입니다.

하지만 2010년 잔부상에 시달리다가 챔스 성남과의 경기에서 시즌 아웃 당하며 선수 커리어가 크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상주 상무와 울산 임대에서도 활약하지 못한 백지훈은 15시즌 수원으로 복귀하였고

김두현과 오장은이 나간 중앙 미드필더로써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아마 지금 백지훈에 대한 기억은 15~16 시즌으로 많이 머물러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2. 신영록 (2003~2009/2010)




수원이 사랑했던 스트라이커



또한 수원의 가장 아픈 손가락

지금의 매탄고 시스템이 있기전 사실상 유스처럼 키웠던 선수 중 하나로

청소년 월드컵 한국 선수 최초로 두 대회 연속골을 넣으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던 시기에 올림픽 입성에 성공합니다.


현재까지도 수원 소속 최연소 출장기록 (16세 7개월) 을 보유하고 있으며

어쩌면 정상빈, 오현규 이전 최고의 영플레이어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큰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거에 비해 대표팀과의 인연은 많지 않았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 이운재 (1996~2010)


이운재2010.jpg


이 대회를 기점으로 이운재는 정성룡에게 바통을 넘겼고 대표팀과도 멀어집니다..

또한 수원에서도 전반기 잦은 실수를 보이며 후반기 하강진에게 밀렸고

결국 윤성효(개XX)에 의해 충격적인 이적을 감행합니다.

평소 레전드에 대해 홀대하는 경향이 있던 수원은 이운재에게 만큼을 다를거라 생각했지만

그에 대한 기대감은 역시나 깨져버렸죠.




2. 강민수 (2010)

강민수는 당시 곽태휘의 부상으로 인해 대체발탁되며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김진규와 함께 한국을 이끌 수비로 기대감을 모았으나 크게 성장되진 못했습니다.

또한 데뷔팀이던 전남에서 4시즌 활약한 뒤 전북-제주로 1년 단위로 팀을 옮겼고 그렇게 수원으로까지 옵니다.


한 시즌 동안 무난한 모습을 보였던 강민수는 통산 두번째 FA컵 우승을 맛보았고

2011 시즌을 앞두고 울산의 오범석과 트레이드 되며 수원과의 짧은 동행을 마칩니다.




3. 염기훈 (2010~ing)


지금은 절대존엄이 된 염기훈이지만 이 시기 수원의 염기훈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차범근 감독이 2007년 부터 원했지만 그 인연이 질기게 이어지지 못했던 염기훈은 2010년 드디어 수원으로 합류합니다.

하지만 당장에 출전해야하는 상황에 부상을 달고 있었던 점, 울산에서의 WBA 이적파동이 있었던 점

마지막으로 제 2의 곽희주로 생각했던 기대주 이재성을 보냈다는 점에서 염기훈에 대한 여론은 최악이였습니다.


결국 시즌 초 계속 되는 결장 속 아챔 경기에 데뷔전을 가진 염기훈. 거기서 바로 2골 1도움의 기염을 토합니다.

이후 자신의 비난에 대해 증명하듯 좋은 활약을 보이며

이근호와의 경쟁 끝에 힘들어보이던 2010 월드컵까지 입성하게 됩니다.

사실 염기훈의 월드컵은 아르헨티나 전 슛만 기억되는 안타까운 면이 있지만

이 대회에서 이청용, 박지성과 함께 중앙 측면 가리지 않고 스위칭하며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았습니다.

이러한 활약으로 이청용에 이어 팀 내 최고 평가를 받기까지 했으나 안타깝게도... 네...


월드컵 이후 의기소침해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엄청난 능력을 터뜨리며 위기의 수원에 2연속 FA컵 우승을 안기고

그 이후의 활약은 모두 알다시피..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1. 정성룡 (2011~2015)

이운재가 떠난 자리는 대표팀에서 자신을 밀어낸 정성룡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포항-성남에서 꾸준히 스텝업하던 정성룡을 수원은 전북과의 경쟁 끝에

이적료 24억 5년 계약 수당포함 연봉 10억이라는 대형 이적을 성공시킵니다.


2007년부터 꾸준히 메이저 대회에 이름을 올리던 정성룡은 2010 월드컵부터 대표팀 주전을 꿰찹니다.

2011 아시안컵에서는 수비진의 호러쇼에 묵묵히 활약했지만 앞선 이운재-김병지를 경험한 축구팬들에겐

정성룡의 활약은 항상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이운재와 마찬가지로 팀에 있을 내내 대표팀에 뽑히며 수원의 기록행진에 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2. 황재원 (2010~2011)

황재원하면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포항에서의 활약을 기억합니다.

승승장구하던 황재원은 해외이적까지 노렸지만 놀랍게도 그는 2010년 수원으로 이적을 택합니다.

초반 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황재원은 점점 팀에 녹아드며 안정을 찾았고

2011 아시안컵 대회까지 참여하여 한일전 극적인 연장 동점골을 터뜨리는 큰 활약을 해냈습니다.


하지만 이 날의 부상으로 황재원은 2011시즌 제대로 된 시즌을 보내지 못한 채 먹튀라는 오명과 함께

시즌 종료 후 결국 성남 조동건과 트레이드되며 수원과의 동행을 맞췄습니다.

또한 선수 커리어 역시 이 시기 이후 크게 꺾이고 맙니다.




3. 이용래 (2011~2017)

경남의 '조광래 유치원'의 주축이던 이용래는 2011년 수원에 합류합니다.

당시 왕성한 활동량과 링커로서의 좋은 모습으로 팬들은 쌍수를 들며 환영했고 이용래에 그 기대에 부응합니다.

또한 조광래가 이끌던 대표팀에서도 기성용의 파트너로 좋은 활약을 이어가며 김정우의 공백을 말끔히 지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대를 모았던 이용래는 2011년 엄청난 혹사로 점차 폼이 떨어지길 시작하고

2012년 중동 이적 과정에서 메디컬 탈락에 이어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당합니다.

그렇게 2013년 복귀한 후 2014년 군대를 간 이용래는 2015년 복귀하였으나 이미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한 상태였으며

그렇게 2016년 잊혀진 이용래가 복귀하지만 이전의 활동량과 스피드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맙니다.

수원에서의 마지막 시즌 부활의 기미를 보여주긴 했지만 더 이상의 계약연장은 없이 팀을 떠나고 맙니다.


지금 대구에서 뛰고 있는 이용래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안타까운 선수입니다.

정말 윤성효의 혹사만 없었다면 어디까지 더 컸을까 싶네요..




4. 염기훈 (2010~ing)

아시안컵에도 참가한 염기훈이지만 이전과 같은 기회를 받진 못합니다.

허정무 이후 조광래 체제에서는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해 큰 활약을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소속팀에서는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시즌입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정성룡 (2011~2015)

아마 정성룡이 대표팀을 뛰면서 제일 극찬 받았던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영국과의 8강전 아론 램지의 PK를 한차례 선방한 것은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였으며

비록 그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4강 브라질전은 나서지 못했지만

3-4위전 운명의 한일전에 나와 팀 승리를 견인하며 와일드카드로 뽑혀 최초의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또한 수원은 2012년 윤성효 마지막 시즌 최악의 분위기와 시즌을 보냈지만

선수 개인적인 커리어로는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하며 수원의 새로운 수호신으로 완벽히 자리메김 합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정성룡 (2011~2015)

하지만 2014월드컵 정성룡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월드컵 알제리전 최악의 판단미스로 인한 실점과 대회 후 파이아 논란까지 터지며 입지를 완전히 잃게 됩니다.

특히나 이전 시즌인 2013시즌부터 '정성룡 덩크슛'이라는 최악의 실점을 기록하는 등

안그래도 간간히 보이는 실수가 더욱 더 잦아지는 모습이 컸습니다.


어린 나이에부터 각종 대회란 대회에 경험치를 먹였음에도 2010월드컵에 이어 또 다시 어이없는 실수를 하자

많은 축구팬들은 정성룡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대회 후 팬들에 대한 인사를 SNS에 남기는 과정에서 또 논란이 터집니다.

결국 그 밈은 오늘날까지 정성룡에게 꼬리표로 남게 되었고 이후 대표팀에서도 김승규, 김진현에게 밀리기 시작합니다.




2015년 호주 아시안컵

정성룡 (2011~2015)

결국 정성룡은 대회를 앞두고 김승규와 김진현에게 밀려 3옵션이 되었고

대회는 김진현이 좋은 활약을 보이며 준우승하게 됩니다.

정성룡은 슈틸리케 호에 간간히 기회를 잡았지만 큰 임팩트는 남기지 못하고

신태용 호부터는 대표팀과 멀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대표팀 여론과 반대로 수원에서 정성룡은 다시 입지를 다진 시즌이였습니다.

계속되는 실수로 수원에서도 여론이 안좋았던 시기가 있었지만

당시 신예였던 노동건의 불안한 모습과 이후 정성룡이 각성한 듯 좋은 세이브를 펼쳐냈습니다.

하지만 FA가 된 정성룡은 팀과 연장하지 못하고 국내이적 시 FA 이적료 발생으로 J리그 가와사키로 떠납니다.


훗날 정성룡은 수원에게 외국인 선수를 추천하였고, 그 선수는 수원을 강등 위기에서 살린 '마나부'였으며

정성룡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우승을 하지 못한 클럽은 수원 삼성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권창훈 (2013~2016/2021)

권창훈은 매탄 출신 최초로 올림픽과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입니다.

(월드컵은 이번 최종명단 차출됨으로써 경험하게 될 예정)


이 시기 권창훈은 팀에서 이미 주축으로 올라선 상황이였고

올림픽 차출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시기입니다.

거기에 멕시코전 결승골을 넣는 등 팀에서도 에이스급 활약을 선보입니다.


클럽에서도 2015년보다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FA컵 우승을 이뤄내고

시즌 종료 후에는 프랑스 디종으로 해외진출에도 성공했습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매튜 저먼 (2017~2018)

수원의 기록이 사실상 깨진 줄 알았던 시점에 이 기록을 이어준 선수는 예상외로 외국인 선수였습니다.

2018 월드컵에 참여한 홍철과 김민우가 당시 모두 상주상무 소속인 탓에 수원 출신이 한명도 없었죠.

거기에 참가가 유력했던 염기훈마저 울산과의 경기에서 갈비뼈 골절로 대표팀에 낙마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수원으로 온 수비수 매튜 저먼이 K리그의 활약을 바탕으로 대표팀에 차출되었고

그 활약을 계속 이어준 덕에 2018 월드컵 호주 국가대표로 월드컵 무대를 밟습니다.

매튜는 이적 초반 그저 그런 모습을 보이다 강원전 멀티골로 팀의 시즌 첫 승을 이끌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강력한 공중볼 장악과 준수한 스피드로 수원의 쓰리백에 큰 힘을 불어넣어줬습니다.

하지만 2018년 무릎 부상으로 3~4개월 아웃되었고 결국 월드컵 이후 사우디로 떠납니다.


월드컵 본선 경기는 비록 출전하지 못했지만 K리그 소속으로 출전한 3번째 외국인 선수로 기억되었으며

이동국에 대한 제스쳐 등 많은 리그팬들에게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2019년 아랍에미리트 아시안컵

홍철 (2013~2020)

오랜기간 수원에서 뛰었던 홍철이지만

수원 소속으로 메이저 출전은 아시안컵이 유일합니다.


양상민의 군 입대로 생긴 자리에 수원은 이적시장에 올라온 홍철을 발 빠르게 영입하는데 성공합니다.

어쩌면 수원의 마지막 빅사이닝이기도 했던 홍철은 오자마자 팀 최고 도움을 기록하였고

팀 사정으로 인해 좌측 윙, 우측 풀백 등을 맡기도하며 수원의 가장 역할을 해냈습니다.

염기훈이 전역한 2014년 부터는 함께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며 '좌파축구'를 이끌어 냈지만

2016년 발목 수술로 인해 6개월이나 공백을 가지게 됩니다. 후에 복귀하여 FA컵 우승에 일조하였습니다.


그렇게 군대를 가던 시기부터 대표팀 부름을 받기 시작한 홍철은 상주상무 소속으로 월드컵을 맛보았고

연이어 아시안컵에도 뽑히며 대표팀 커리어를 이어가게 됩니다.

당시 김진수가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무난히 주전을 꿰찼지만 8강에서 김진수가 복귀하면서 바로 밀렸고

스피드나 킥력 등이 본격적으로 이 시기부터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소속팀에서도 점점 떨어지는 경기력에 대한 우려가 나왔고 부상이 잦아지며 기복있는 모습을 보였으며

2020년 또 다시 장기부상으로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6월 결국 울산으로 이적합니다.

울산으로 이적 당시 좀 의견이 갈리기도 했지만 계약이 반년 남은 시점에서 결과적으로는 6~7억의 이적료를 챙기며 이득을 봤고

대구에서 뛰는 지금까지도 수원에 대한 애정을 간간히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며 2회 연속 출장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1. 안찬기 (2020~ing)

매탄 출신으로 두번째로 올림픽을 맛본 선수입니다.

연령별 대표에서 송범근의 백업으로 계속해서 뽑혔으며 올림픽에서도 출전은 하지 못합니다.

평가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많은 수원팬들이 안타까워했고 현재는 청주로 임대 중입니다.

하지만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특수성 때문에 아직까지는 지켜보게 되는 선수입니다.




2. 권창훈 (2013~2016/2021)

에이스급 활약을 했던 2016년, 하지만 2020년 권창훈은 선발부터 논란의 대상이였습니다.

올림픽 이후 유럽진출까지 성공했으며 거기서도 좋은 모습으로 더욱 스텝업이 될거 같던 권창훈은

2018년 월드컵을 앞두고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최악의 부상을 당하고 맙니다.

특히 리그 최종전 순위와 관계도 없는 경기에서 당한 부상이기에 많은 축구팬들의 탄식을 자아냈죠.

또한 박주영 이후 리그1 한국인 두자리수 득점을 미드필더가 기록했기에 더욱 기대감이 커졌던 시점입니다.


이후 아시안게임까지 출전하지 못한 권창훈의 유럽생활에 발목을 잡는 것은 '병역문제'

이 때문에 권창훈에게 올림픽 출전은 간절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잔부상 등으로 프라이부르크에서도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였기에 

권창훈의 와일드카드 발탁에 많은 의문부호가 붙었고

결국 올림픽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하지 못하며 군 문제 해결을 위해 수원으로 5년 만에 복귀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집 나간 아들이 복귀하여 쌍수들고 환영했지만

사실 권창훈은 수원에서 이미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현재 김천으로 입대하였고

지금도 논란 속에 2022 월드컵에는 김천 소속으로 입성에 성공합니다..

(힘내라 빵훈아..)






비록 수원 삼성은 이 기록이 깨졌지만

벤투 감독이 카타르로 오현규를 데려간다는 소식에 많은 팬들이 놀랐을겁니다.

어쩌면 좀 더 일찍 터졌다면 오현규 선수로 인해 이 기록이 유지되지 않을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항상 이런 기록을 유지해준 지나간, 현재 있어주는 선수분들께 감사하네요.

이상으로 긴 글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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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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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열두번째 22.11.12. 20:48
아 참고로 여기 매북, 북패로 표기 안한 부분이 있는데
그냥 칼럼식으로 쓰고 싶어서 정식 명칭 쓴거니 이해좀 해주세요
댓글
이운재 22.11.12. 20:40
오현규가 정말 혹시 이 기록을 이어가게 된다면 엄청날듯
짱짱빈 22.11.12. 20:46
이런 수원역사를 알수있는(?)글 좋아요💙
열두번째 22.11.12. 20:48
아 참고로 여기 매북, 북패로 표기 안한 부분이 있는데
그냥 칼럼식으로 쓰고 싶어서 정식 명칭 쓴거니 이해좀 해주세요
댓글
Ehfi 22.11.12. 21:19
불투이스 네덜란드 어떻게 안되나
Full빅버드 22.11.12. 21:41
아무리 매북패 + 울산 놈들이 한국 국대 통해 월드컵에 많이 보냈어도 그놈들은 외국인 선수를 월드컵에 보낸 경우는 없을듯 ㅋㅋㅋㅋㅋ 근데 수원은 있지 ㅋㅋㅋㅋㅋㅋ
이문로 22.11.12. 21:45 @ Full빅버드
매북 윌킨슨 월드컵 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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